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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 27, 2020

축구화를 벗고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그때 그 스타’를 만납니다.

[포포투=조형애]

2005년 U-20월드컵 ‘무각 골’로 이름을 알린 소년은 FC서울이 아닌 수원삼성에서 가장 높이 날았습니다. 저공비행의 막을 알린 2019년. ‘승리의 파랑새’ 백지훈은 자연인으로 자유롭게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유튜버, 해설 위원, 영어 독학, 축구교실까지… 그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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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 후 5개월 여가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보냈나?
유튜브(백지훈 더 챌린저 'The Challenger’)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있는다.(웃음) 수익은 이제 조금 나고 있는 수준인데… 쉽지 않습니다. 아직 내가 유튜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도 하고, 콘텐츠 만들기도 어려운 것 같다. (FFT: 가장 만족하는 콘텐츠는?) 첫 업로드한 영상?! 왜 유튜브를 하게되었는지,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2월 장어 식당 개업과 축구 교실 운영을 두고 상담받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보았습니다. 축구 교실을 택했는데, 진행되고 있는 건가?
자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일단은 다 멈춘 상황입니다. 위치는 죽전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은퇴 후 시간이 흐르면서 ‘꼭 해야겠다’까지는 아니지만 늘 좋은 자리나 상황이 생기면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퇴 당시로 돌아가보자. 만 34세, 비교적 일찍 은퇴를 결정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홍콩에서 못해도 4-5년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즌 막바지에 몸이 너무 힘들더라. 한국 들어와 보니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감이 없어진 거다. 그래서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은퇴 후 뭘 할지 계획을 짜 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결정한 건가!?
아니다(웃음).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그만두면 행복할까?’, ‘앞으로 뭘 할까?’ 계속 생각했습니다. 홍콩에서 보낸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인정도 받고, 박수도 많이 받았습니다. 더 뛰려면 뛸 수도 있었지만 아쉬워 해줄 때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판단했습니다. 추하게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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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홍콩 컵대회 우승 소식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새 시즌 동기부여가 됐을 것 같은데?
우승의 희열은 해 본 선수들만 안다! 당시엔 정말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후에 했던 리그 2,3경기였습니다. (마지막 경기) 상대는 리그 최하위 팀이었고, 팀 간 전력 차이가 많은 홍콩 리그 성격상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빨리 끝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단 한 번도 축구하면서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은퇴를 알린 뒤 들은 말 중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무엇인가?
(현)영민이 형이 SNS 댓글로 ‘누구나 은퇴는 할 수 있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은퇴식은 못 한다’는 글을 남겼는데 그게 와닿았습니다. 사실 은퇴식을 안 하려고 했습니다. 나서는 걸 안 좋아하기도 하고, 수원을 떠난 지도 오래되지 않았나. 팬들께도 잊혀 있었고… 수원이 감사하게도 해주셨다.

서울과 수원에서 뛴 얼마 안되는 선수로 유명합니다.
수원으로 갈 때 원해서 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슈가 됐었습니다. 당시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양쪽 서포터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었습니다. 서울에선 ‘수원 간다’고, 수원은 ‘너 같은 애 필요 없다’고. 그런데 우연찮게 넣은 골들이 결승골로 많이 연결되면서, 팬분들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수원에서 뛴 시간이 훨씬 길고, 그만큼 정도 훨씬 많다.

당시엔 몰랐지만, 돌아보니 ‘참 좋았구나’ 싶은 때가 있나?
수원에서 뛴 모든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형들과 뛰었고, 서포터도 정말 많았고, 훌륭하신 차범근 감독님이 계셨다. 다신 그렇게 훈련하고, 경기할 수 없다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지금 수원을 보면 어떤가?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지원도 많이 받았고,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지원도 당시만큼 안 되고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운 건 어떻게 보면 조금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서울 팬은 수원 간다고 욕하고, 수원 팬은 너 같은 애 필요 없다고 욕하고…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백지훈 하면 U-20월드컵 나이지리아전 골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도 최고의 골인가?
그 골로 인해 축구 인생이 많이 변했습니다.  내 존재를 알리고 A대표에도 발탁됐습니다. 사실 각도를 보고 찬 건 아니고, (박)주영이가 슈팅하는 순간 튕겨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뛰어가서 방향만 보고 때렸는데, 운 좋게 들어갔습니다.

그 시절 함께 뛰었던 오범석, 정조국 등은 현역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보기 좋다. 사실 그 친구들보다 내가 오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웃음). 친구이긴 하지만 난 ‘빠른’이라서 한 살 어리니까. 같이 생활하다 보면 체력도 내가 더 좋았습니다. 이젠 조국이나 범석이나 (이)동국이 형처럼 오래 했으면 하고 바란다.

‘아드보카드의 황태자’라는 별칭도 있었습니다. 막상 2006독일월드컵에선 뛰지 못했는데…
감독님의 선택이시다. 내가 부족했었나 보다 생각합니다. (FFT: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진 않나?) 전혀! 2002한일월드컵을 보고 저런데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하게 꿈꿨다. 그런데 2003년 프로 입단하고, 2005년 국가대표가 되고, 2006년에 월드컵에 진짜 나갔습니다. 꿈만 같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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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도 주목을 많이 받은 선수였다!
억울할 때도 있었고, 좋을 때도 있었다(웃음). 정말 열심히 하고, 경기력도 좋았을 때 외모에 대한 기사나 말만 나오면 속상했습니다. 반대로 전혀 이슈가 될 법한 상황이 아닌데 주목해 주셨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축구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인정받고 앞으로 성장해야 할 선수들에게 해 줄 말이 있을 거 같다. 
어렸을 때 어딜 가든 칭찬받고, ‘잘한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때 더 큰 꿈을 가졌어야 했는데 난 만족을 했습니다. 경기 뛴다고 해서 다가 아닙니다. 지금 주목받는 어린 선수들이 축구화 벗는 그날까지 계속 도전해서 더 이루려고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인간 백지훈은 어떤 일에 도전해보고 싶은가?
뭐든 배우고 싶다. 축구 말곤 해본 게 없어서 다른 걸 많이 해보고 싶다. 영어는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해설 생각도 있었는데 코로나로 리그가 중단되고 중계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방송도 기회 되면 하고 싶다. 지도자 꿈도 있어서 자격증도 따려고 합니다.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싶다. (FFT: 알아보면 어쩌려고!) 못 알아본다!

FACT FILE
전남드래곤즈
FC서울
수원삼성블루윙즈
상주상무(군 복무)
울산현대(임대)
서울이랜드FC
리만FC
대한민국 대표팀

* 본 인터뷰는 2019년 11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2020년 3월, 추가 인터뷰로 내용을 더하였습니다.

사진=이연수, 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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